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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담요다

  • 평점 8.7점 / 7명
  • 2015.08.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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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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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담요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고갱의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주, 또는 보다 높은 차원에 속한 시공간의 막막한 흐름 속에서, 덧없이 짧고 미약한 빛을 반짝이다 사라지는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먼지라 불리기에도 과분하다. 언젠가 서로 만나 미칠듯이 사랑하고, 때로는 죽일듯이 미워하며, 어느 순간 거대한 그림자 저편으로 스며드는 먼지, 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우리는 믿을 권리가 있을까.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두 남자의 여정을 담은 영화, '버킷리스트'가 있다. 이 영화가 내 가슴에 아로새긴 장면이 있다. 두 남자 중 하나인,억만장자 에드워드는, 자본주의의 혜택 아래 거의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동안 가족은 철저히 외면한 채로 돈만을 쫓아 왔다.병원에서 만난 삶의 유일한 동반자, 카터는 그에게 조카를 만나 볼 것을 제안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목록은 지워졌다. 그가 그의 어린 조카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에드워드가 처음 버킷리스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를 적었을 때, 나는 눈살을 찌푸렸었다. 그동안 삶의 궤적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돈으로 여자의 몸을 살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 앞으로 미리 달려가본다면 자신의 삶에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고 하였다. 죽음을 앞둔 에드워드에게는 그 순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어린 조카, 환언하면 가족이었다.

어쩌면 가족은, 담요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항상 등을 따뜻하게 덮어주지만, 마치 한 몸인 듯하여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등 뒤에 항상 있지만 추울 때 그 무엇보다 든든하게 해주는. 덕분에 우리는 깜깜한 이 밤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가족, 이 세상에서 이처럼 따뜻한 단어가 또 있을까. 나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동생이고, 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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