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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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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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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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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픔이 있다.

 

아픔이 있다. 너무나 아파서 그 상처를 쓰다듬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그런 아픔이 있다. 또, 아픔도 있다. 상처 사이로 결국은 더 높은 곳을 보게 되는, 그런 상처도 있다. 내가 그랬다. 가을 들판에서 수줍게 익는 사과처럼 서툴었던 어린 시절, 이 글은 그 시절에 흘린 눈물에 대한 기록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베개 적시며 홀로 흐느꼈던, 그 길었던 밤들에 관한 증언이다.

아버지의 꿈은 신부였다. 어머니의 꿈은 수녀였다. 두 분은, 땅과 더 가까운 사랑을 위하여 서로 결혼하셨다. 더할 나위 없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다. 나는 그 밑에서 자랐지만, 신을 믿지 않았다. 부모님은 기다리셨다. 그 누구도 나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달력이 수십 장 넘겨졌다. 세월 앞에 사람도 변했다. 수천 번의 아침과 또 수천 번의 밤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부모님은 크게 싸우셨다. 아버지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집안 전체를 흔들자, 나는 깨달았다. 오늘의 싸움은, 그동안 한 조각씩 쌓여 온 인내가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었다. 매일 밤, 어둠 속에서 나는 기도했다.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와 엄마가 많이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좋게 해결되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처음으로 진심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알고 계시죠?’

영원한 밤은 없었다. 깊어진 밤은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갈등은 처음처럼 잠잠해졌다. 이 싸움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끝을 알 수 없는 시련 밑에서 내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진심 어린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도움이 되었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때부터, 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기도를 통한 영혼의 공명을 믿었다.

이 사건은, 멀리서 보면 보면 부모님 사이의 불화이지만, 나에게는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영혼의 이 성장통을 겪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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