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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 결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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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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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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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 결과는 다르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초래했을 때, 그것은 '선'이다. 반대로 나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판별이 서로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의도와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예를 들면 선의의 거짓말이 그렇다. 선의의 거짓말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키케로에 따르면 최상의 결과가 나올 때만 도덕 원칙에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 좋은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를 행해도 된다는 뜻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여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첫째, 선한 의도가 모두 좋은 결과를 배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화자의 의도가 선한 것일 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보통의 거짓말과 다를 바 없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가 보장된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되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선의의 거짓말은 사회와의 신뢰를 깨뜨린다. 자녀에게 사기 칠 궁리만 하는 부모나, 상사가 볼 때만 일을 하는 직원은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상호 간의 신뢰는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 발전시키는 데에 전제 조건이 된다. 비록 좋은 의도였다고 할지라도 사람과 사회를 기만하는 것은 곧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구성원이라는 낙인과 결부된다.

칸트는 인간 자체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금한다. 이에 반하여, 선의의 거짓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성을 띄기 때문에 칸트 윤리는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이 있다. 현실성과 관련해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콩스탕의 비판이 유명하다. '살인자가 찾아와서 친구의 행방을 물을 때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가?' 이때 진실을 말한다면 친구는 틀림없이 죽을 듯하다. 하지만 '호도성 진실'이 있다.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거짓도 아니므로 칸트 윤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 많은 선의의 거짓말과 대체할 수 있는 호도성 진실은, 살인자가 친구를 찾을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많은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의도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선의의 거짓말 자체는 개인적,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이 '선의'라는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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