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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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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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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표절은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하여 사용하여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표절을 금지하고 만약 이 금기를 깬다면 비난으로 그 값을 대신한다. 필자는 이런 사회상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표절은 사전적 의미에서도 볼 수 있듯,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한다. 물론, '전부'를 도용하는 표절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일부'를 도용한 표절은 관용으로써 눈감아주어야 한다.

사회에는 표절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첫째로 표절이 금지된 창작물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저작자가 타인이 자신과 같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상태로 지속된다면 더욱 진보된 기술의 출시가 늦어지고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둘째로 사용자들의 불편함이 끊임없이 늘어난다. 자신의 창작물에 '표절금지'라는 팻말을 걸고 철통같이 지키고 표절이 두려워 자신이 지정한 곳에서만 생산되게 한다면 분명 급증하는 수요량에 미치지 못하는 공급량을 보이며 그 창작물은 침체하게 되고 사용자들의 불편함이 늘어날 것이다.

일례를 들어 말하자면, 컴퓨터의 발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우리의 삶을 한차원 더 진보된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만약 첫 컴퓨터의 발명자가 자신의 창작물임을 강조하면서 일말의 관용도(여기서는 '일부' 도용(표절)을 말한다) 베풀지 않았다면 컴퓨터의 보급률은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컴퓨터의 경쟁력또한 지금보다 낮아지게 되어 현재의 기술력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컴퓨터 발명자는 관용을 베풀었고, 현재의 보급률과 기술력을 이끌어냈다.

앞서 말했듯 표절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사회상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창작물이 창작자 자신에게 제공한 눈부신 이익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금의 관용을 베품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고 진보된 기술력을 가질 수 있다. 프랑스의 작가인 스타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지혜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관대해진다.' 라고. 지혜를 나눌수록 인간은 행복해질것이며 개인주의를 강조할수록 인간은 더딘 성장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는 창작자의 선택이다. 사회를 위한 작은 관용을 택할 것인지,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좇는 개인주의의 나락을 택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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