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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고등학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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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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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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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고등학생의 이야기

 


그날 강의는 일주일 동안 내 인생을 통째로 복습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미 어느 정도 입지에 올라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사님의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감히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주변에서 공부 안 하고 미쳤냐 소리를 들을 만큼 기상천외했던 내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한때 책에 미쳐있는 학생이었다. 책은 나에게 있어 작가들이 써놓은 글이 힘입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였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처럼 정형화된 지식이 아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문학이 정말로 좋았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도, 야자 시간에도 항상 나는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집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더 친했다. 또한, 나는 학교에서 하는 행사, 이를테면 외부 강사의 강연이나 인문학 캠프같이 학교 외부에서 열리는 행사 같은 것에 참여하길 마다치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받아 자극을 받는 것이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몇몇 선생님들에게 걱정을 안겨드리기에는 충분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왔으면 대학 입시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책이나 행사 참여는 후에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 '3학년이 되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네 신세에 스스로 후회할 것이다.' 라며 내 현 생활에 대해 지적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반드시 겪는 입시에 대해 아직 무지했던 나는 그런 조언들을 당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도 고등학교 2학년 후반이 되자, 부모님이 대학을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것도 있었고, 나 역시 대학의 필요성을 실감했기에, 다가오는 입시라는 현실에 순응해 당장 내가 대학을 갈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당시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방법은 입시사정관제, 내가 행사에 참여한 기록이 많으니 그것을 생활기록부에 적어놓고 추가로 앞으로 너의 재능을 살려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혹여나 특기자 전형으로라도 대학을 갈 수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행사참여나 책 읽기를 하는 대신, 각종 교내 글짓기 대회와 백일장을 위해 글쓰기를 연마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백일장에 나가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책을 보기만 하다가, 직접 글을 쓰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던데다가. 완성된 글을 친구들이 재밌어해 준 덕에 내 글은 좀 많이 서툰 감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덕에 나는 꽤 높은 확률로 입상할 수 있었는데, 특히 백범 백일장에 입상한 덕에 수상자 자격으로 부모님과 같이 호텔에 가서 식사하였던 기억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인서울을 위해 새얼백일장이라는 인천에서 열리는 커다란 백일장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글쓰기는 계속해서 꼬여가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이 백일장의 입상 경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한동안 입상을 위해 필요한 기교들을 하나씩 익혀나가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내 손이 점점 무뎌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를 수필 쓰듯이 풀어내는 것이 내가 주로 하던 방식이었는데, 입상을 위해 미사여구를 넣고, 있지도 않았던 것을 일을 덧붙여서 부풀리고, 글의 양식을 자로 잰 듯이 구성하는 이런 기교를 추가하고부터 분명 글은 점점 세련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느 새부턴가 나는 글쓰기에 슬슬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인천 문학경기장 한 가운에서 입상하기 위해 글의 구조를 치밀하게 구성하기 시작하는 것부터, 표현을 내가 아는 한 최대한 세련되게 채워 넣고, 가능한 한 심사위원에게 어필하기 위해 참신해 보이려 노력하며, 전력을 다해 원고지를 채워 넣고 있었고, 백일장 마감 시간 5분 전까지 계속해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모든 것을 쏟은 백일장은 막을 내렸다. 그 후 나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완전히 지친 채로 집으로 향했었다.
결과 발표 날이 되자, 나는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입상을 기대해도 된다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결과는 장원도 장려도 아닌 낙방이었다. 그런 결과가 나와버리자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전력을 다한 백일장인데 낙방이라니. 역시 세상에는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많구나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이런 생각들이 수도 없이 떠올랐고, 그 백일장을 끝으로 나는 펜에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현실을 직시해 문제집을 폈을 뿐이었고, 그 덕에 미쳤냐는 소리도 더는 듣지 않았고, 너 같은 학생은 처음 본다는 소리도 더는 듣지 못했다.
새얼 백일장 입상 실패는 내가 한동안 절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즐거워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과, 그리고 나 역시 글을 쓰면서 그 과정 자체를 즐겨왔다는 것이 대학 와서 겨우 떠올려내어 나는 스스로 움직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에 가입했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아직 세상에는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 때문에, 나중에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냐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렇지만 그날 강연은 이 실패마저도 나중에 내 글의 양분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강사님은 절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는 뻔한 말은 하지 않으셨다. 다만 실패를 하며 경험을 쌓으라는 말과 실패도 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는 말을 하셨을 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항상 탄탄대로를 걸으며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사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너무 편한 길로만 주인공이 가면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게 주인공의 인생은 굴곡이 많도록 하고 그로 인해 성장을 하게끔 작가가 알아서 유도하게 된다. 새얼 백일장 이야기는 내 인생에 있는 한 번의 굴곡에 불과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그런 실패 말이다. 물론 또 실패할 수도 있겠다만, 켄트 김 강사님의 강연은 내가 또 다시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는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굴곡이 될 것이라 감싸주는 강연과도 같았다.
첨삭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