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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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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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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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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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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팔도총도이다. 이 사진의 오르쪽을 보면 독도와 울릉도가 명확히 표기 되있는 것을 보아 오래전 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독도를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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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울릉도에서 본 죽도이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죽도와 울릉도의 거리는 매우 짧으므로 날씨가 나쁘나 좋으나 둘다 볼 수 있으므로 일본의 주장은 틀렸다.


대구 오성중학교 이성혁

독도는 울릉도에서 약 87.4Km 떨어져 있는 화산섬이다. 독도는 외형적으로 특별할 것 없는 섬이지만 일본의 영유권 주장 때문에 독도는 우리는 독도가 한국 땅인지는 알지만 왜 독도가 우리 땅인지, 언제부터 우리의 영토였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역사서에 독도가 어떻게 기술되어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독도에 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먼저 4세기경에 만들어진 신라 토기가 울릉도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울릉도에 신라인들이 거주하였을 짐작할 수 있다. 울릉도와 독도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지금도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일 때. 그 당시 신라인들 역시 독도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역사서를 찾아보면 ‘삼국사기’에 서기 512년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항복시켰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고려 시대에 우산국이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토산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고려사"에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는 독도가 직접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다. 독도가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언급된 자료는 ‘세종실록 지리지’와 ‘팔도총도’이다. 먼저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우산(독도)과 무릉 두 섬이 현의 정동 (방향)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청명한 날씨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우산국이라 불렸다.”라고 적혀져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 말하는 우산이 바로 울릉도 앞에 있는 죽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죽도는 날이 청명하나 안 좋으나 항상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팔도 총도에서는 독도와 울릉도가 동해 바다에 표기 되어있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다.
근대로 오면서 독도는 더욱 고통을 받게 되었다. 러일 전쟁을 할 때 일본이 군사적 망루를 설치하였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혼란을 틈타 일본 정부는 다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지금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전혀 사실이 아닌 일방적인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에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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