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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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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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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임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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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의 독도

 

독도는 예로부터 줄곧 우리의 땅 이였다.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 이자 다양한 동식물들의 터전이 되어주는 독도는 과연 역사 속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독도 사료는 약 900년 전 기록된 삼국사기 속에서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인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하여 독도와 울릉도를 신라의 영토로 복속하였다. 그에 관해 삼국사기에는 ‘우산국은 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하는데, 사방 백 리의 땅이다’ 라고도 언급하였다. 이후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일 정도로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두 섬의 위치 지리적 특징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 15세기의 조선 팔도 지도에서는 독도와 울릉도를 제시하여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의 땅임을 밝히고 있다.
독도 하면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안용복이다. 안용복과 동료들은 독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으로 낚시를 하던 어부에게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에서 안용복의 강력한 항의로 에도 막부는 독도는 한국의 땅이라고 인정을 하였다. 실제로 에도 막부의 질문에 대한 답변서(1695)에서, ‘죽도는 물론 그밖에 소속된 섬은 없다’라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였다. 태정관 지령문에는, 1877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죽도와 그리고 그 밖에 한 섬은 본방과 관계가 없다’라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태도를 바꾸었다.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워,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1905)에 ‘오키시마에서 서북으로 85해리 거리에 있는 섬을 다케시마라고 칭하고, 지금 이후부터는 본 현 소속의 오카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라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교육부인 문부성이 1887년 허가한 지리 교과서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나란히 한국의 땅임을 서로 다른 가로줄을 사용하여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1905년 일본의 박물관이 [러일전쟁의 실기]를 출판하며 부속으로 수록한 한국 전도에는, 울릉도를 송도로, 독도를 죽도로 표기하여 한국의 영토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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