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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小暑)와 대서(大暑)를 건너 청명(淸明)을 맞이하는 섬,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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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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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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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小暑)와 대서(大暑)를 건너 청명(淸明)을 맞이하는 섬,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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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과 무릉의 두 섬은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동해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섬이 있다. 한글로는 독도, 한자로는 외로운 섬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절해고도란 점에서도, 가파른 지형 때문에 사람이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뜻과 이름이 잘 어울리는 섬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은 외로웠던 나날이 많았던 만큼 품은 이야기도 길었다.

과거 울릉도에는 우산국이라는 독자적인 정치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사건을 삼국사기(1145년)에 다룬 것이 독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서기에 기록된 우산국은 하나의 섬으로 묘사되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우산국에 포함되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독도와 울릉도가 제대로 분리되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1452년)가 최초라고 전해진다. 이 문헌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다르게 칭하는데, 이를 통해 당시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를 따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로는 조선이 독도를 지배하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으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인들이 육지를 넘어 울릉도와 독도를 비롯한 섬에서도 약탈이 잦아지자 참다못한 조선의 안용복이 사람을 모아 일본인을 내쫓고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뿐만이 아니라 독도도 조선의 영토임을 확실하게 인정받으니 숙종실록(1696년)에 이 사건이 기록된다.

1905년에는 시네마 현에 독도가 편입되면서 일제강점기에 앞서 가장 먼저 빼앗긴 우리나라 영토이기도 하며, 수십 년이 흐른 현재까지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섬이다.

수백만 년 전 화산 분화로 형성되어,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던 독도는 많은 문헌에 기록되었다. 외딴 섬에 관한 정보가 많이 전래한 것을 보면 우리의 조상님들께서 기록을 중요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독도가 과거나 현재나 늘 화제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몇백 년간 이 땅에는 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더위와 장마를 몰고 오는 여름을 묵묵히 버텨왔다. 어서 독도가 봄이 짙어지고 하늘이 맑게 개는 청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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