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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도 운동장, 지진이 나도 운동장, 전쟁이 나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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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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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qh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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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도 운동장, 지진이 나도 운동장, 전쟁이 나도 운동장?

 

‘탁- 탁- 탁-’

민석이가 실내화를 두 손에 끼고 장난스레 털어내자 옆에 있다 봉변을 당한 친구가 모래먼지에 얼굴을 찌푸린다. 현관 앞에는 발판에 발을 비비며 트위스트를 추고있는 무리들에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대충 털고 들어오세요. 그거 어차피 집에 가서 빨아야 돼.”

옆 반 선생님 눈치가 보인 내가 황급히 외친다. 실내화 가방 들고 가기 귀찮다는 듯 아아하는 원성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다른 반은 다 신발 갈아신고 나갔는데..”

맞는 말이다. 교육 영상이 끝날 때 즈음 미리 복도에 나가 갈아신고 있으면 사이렌 울리는 타이밍에 맞춰 운동장에 나가 그늘진 스탠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겠지. 이미 아이들에게 ‘수업 째고 운동장 갔다오기’ 행사가 되어버린 대피훈련에 진짜 불이라도 나면 반사적으로 신발부터 갈아신지 않을까? 불이 나도 운동장, 지진이 나도 운동장, 전쟁이 나도 운동장.. 지구가 멸망해도 운동장에만 가면 살아남을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재해는 그런 나를 비웃듯, 운동장이 없는 밤에 나를 찾아왔다.

*

2016년 9월 12일 관측이래 가장 강력했던 경주 지진의 여파는 서울에 위치한 18층 오피스텔에서도 선연히 느껴졌다. 처음 겪는 감각에 잠시 당황한 나는 흔들림이 멈추자 아래층에 사는 동기를 데리고 무작정 계단을 내달려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어디로 가지? 학교는 너무 멀고 밤중에 교문이 열려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고층 건물들과 떨어져 있는 역 앞 공터에 우리는 한참이고 앉아 있었다.

"추운데 이제 들어가면 안돼?"

되나? 안 되나? 매년 학생들을 데리고 재난 대피 훈련을 했어도 그 상황에서 답을 할 수 없던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재난은 학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뼈아픈 반성과 함께, 학생들이 안전체험관에서 학원, 가정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언젠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가장 안전할 수 있는 해답을 얻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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