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이동 활발해져야 사회가 번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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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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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대나 자식 세대에서도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계층 이동은 하위 계층 사람이 더 높은 계층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계층 이동이 중요한 까닭과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원인을 살펴보고, 계층 이동이 활발해지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 80%가 “경제적 차이 극복 어렵다” 



개인이 노력해 번 재산의 비중은 감소하는 대신 부모 등에게 물려받은 재산의 비중은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경제학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재산 형성에서 상속과 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에는 연평균 27%였는데, 2000년대에는 42%까지 치솟았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이다. 

기회가 균등하고 공정한 사회는 누구나 노력하면 경제적으로 더 높은 계층으로 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많지 않다. 게다가 기회를 잡아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쌓아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을 앞지르기 어렵다.

요즘 청년층 사이에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은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상에서 비롯했다. 수저 계급론은 청년들의 처지를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은•동•흙수저’ 등으로 나누고,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5년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기 세대에서 노력할 경우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한 사람은 21.8%에 그쳤다. 지난 2009년 35.7%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자식 세대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점이다. 자식 세대에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31%만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이는 2009년의 48.4%과 비교해 17.4%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계층 이동이 왜 활발해져야 하나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인물이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높은 성취를 이뤘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클수록 사회 발전의 가능성도 커지는 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 체제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한다. 그래서 개인은 더 큰 부를 쌓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그런데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줄면 개인이 더 이상 노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 사회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한다는 관점에서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커야 한다. 정의는 한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공정한 도리를 말한다. 시장 경제를 떠받치는 윤리적 기반은 능력주의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부모가 물려준 신분이 개인의 성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근대 사회에서는 정해진 규칙만 지키면 누구나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지배했다. 하지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기며 이러한 윤리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길 경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한 사회가 건전해지려면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려는 의욕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면 무기력과 절망에 빠져 윤리 의식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회 질서에 불만을 품고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증가한다.

계층 이동이 왜 어려워졌나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가장 큰 까닭은 경제 성장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률이 높았다. 그래서 일자리도 많았고, 열심히 일해 부를 쌓을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경제 성장 속도가 늦춰지자 개인의 노력으로 번 돈보다 상속 받은 재산이 더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어느 사회나 계층은 존재한다. 하지만 건전한 사회는 계층 이동의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교육인데, 지난 수십 년 동안에는 교육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도 대학 교육을 받으면 더 높은 계층으로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이 빈부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계층을 대물림시키는 통로로 전락했다. 부유층의 자녀는 수준 높은 학교 교육과 사교육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빈곤층 자녀는 대학에 다니기도 쉽지 않고, 명문대를 졸업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복지 제도가 부실해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더욱 줄였다. 복지 제도는 빈곤층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본 생계를 지원하고, 나아가 치료를 받을 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까지 보장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복지 제도가 튼튼하지 않아, 빈곤층의 자녀들이 자신의 미래에 희망을 갖도록 이끌어 주지 못한다. 따라서 빈곤층 자녀들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려는 의욕마저도 갖지 못한다.

누진세 강화하고 빈곤층 복지 혜택 늘려야

우리 사회에서 끊어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이으려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고속 성장은 어려우므로 다른 방법으로 부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부의 불평등을 피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불평등은 구성원들 다수를 무기력과 절망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나라에서 부를 적절하게 재분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장치는 조세 제도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 복지 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소득세와 상속세 등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소득세는 연간 1200만 원 이하의 경우 6%가, 1억 5000만 원 이상은 38%가 각각 적용된다. 하지만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누진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상속세율은 1억 원 이하의 경우 10%, 30억 원 이상은 50%가 적용된다. 세율이 높은 것 같지만 각종 공제 혜택이 따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속 받은 재산이 많아도 세금을 조금만 내는 부자들이 적지 않다.

빈곤층 자녀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주는 일도 중요하다. 대학 입시에서 빈곤층 자녀를 위한 기회균등전형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이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더 많은 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 빈곤층 자녀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려면 생활비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

선진국에선 빈곤층에 더 많은 교육 기회 보장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1984~)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다. 얼마 전 그는 아내가 딸을 낳은 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며 재산의 99%인 52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빈부 격차가 더 심하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 인종의 빈곤은 대물림된다. 그런데도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는 뿌리 깊은 기부 문화 덕이다. 

1961년부터 실시된 적극적 우대 조치도 주목해야 할 제도다. 이 제도는 빈곤을 대물림하는 흑인들에게 계층 이동의 기회를 주기 위해 대학 신입생과 공무원을 뽑을 때 특혜를 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돈이 없어도 대학에 다닐 수 있다. 1971년 빌리 브란트 총리(1913~92)가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등록금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6년부터는 16개 주 가운데 5개 주가 대학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육은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 2014년부터 모든 대학에서 등록금을 없앴다. 또 빈곤층 자녀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주거비와 생활비도 지원한다.

독일은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빈곤층의 기본 생계뿐만 아니라 교육 받을 기회까지 보장한다. 이러한 복지 제도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조세 제도로 뒷받침된다. 예를 들면 소득세의 최고 세율이 45%에 이른다. 지난 2013년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한 소득세 비중이 우리나라는 3.7%였지만 독일은 9.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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