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아기 허용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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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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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논쟁 가운데 하나가 맞춤형 아기를 허용하는 문제였다. 맞춤형 아기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편집해 낳은 아기를 말한다. 이는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유전자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도 강하다. 맞춤형 아기의 기술적 원리와 선진국들의 대응 방식을 살펴본 뒤, 맞춤형 아기의 허용 여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알아본다.

중국서 인간의 빈혈 유전자 제거하는 실험 성공

1997년 개봉한 미국 영화 ‘가타카’(감독 앤드루 니콜)는 유전자에 의해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미래 사회를 그렸다.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한 맞춤형 아기들이 커서 사회의 중요한 일을 도맡는다. 이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높은 소득을 올리며 호화 주택에서 산다. 반면 열등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은 허드렛일을 하며 차별을 당한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중국의 한 연구팀이 인간 배아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애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실험은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처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한 사례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유전자의 일부를 제거하고 새로운 유전자로 대체하는 기술을 말한다. 수정란은 2주에서 8주까지 세포 분열이 이뤄지는데, 이를 배아라 한다. 수정이 이뤄진 지 8주 후부터 출생하기까지를 태아라 한다.

지난해 9월에는 영국의 연구팀이 초기 단계의 배아에서 특정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허가해 달라고 정부에 신청했다. 수정란 100개 가운데 초기 단계의 배아까지 가는 것은 50개 미만이고, 이 가운데 25개만이 자궁에 착상된다. 이처럼 많은 수정란이 착상에 실패하는 이유를 밝히려면 유전자 편집을 통해 초기 단계의 배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찬성 의견은 유전적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반대 의견은 이 기술이 악용되면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 이용해 맞춤형 아기 만들어 



유전자는 외모와 지능, 건강 상태 등 부모의 특성을 자식에게 전달하는 기본 물질이다.

유전자 관련 기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생물체의 한 종에서 얻은 유전자를 다른 종에 집어넣어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종을 만들어 낸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인간이 원하는 형질을 가진 생물체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자연에 없었던 새로운 생물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생태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앞서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했는데, 효소를 사용해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새로운 유전자로 대체한다. 문제가 되는 유전자만 선별해 잘라내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고도 부른다. 유전자를 백과사전에 비유하면, 어느 한 페이지에 적힌 잘못된 글자를 정확하게 골라 고쳐 쓸 수 있다.

이 기술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마찬가지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바람직한 형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있던 유전자를 없애는 것이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보다 부작용이 덜하다. 하지만 앞으로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우수한 형질을 갖춘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10년 안에 유전적 결함을 완벽하게 제거한 인간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 유전자들의 기능을 정확하게 분석할 경우 ‘키 180cm, 지능지수(IQ) 150’의 맞춤형 아기를 주문하는 일이 현실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필요에 따라 조작하면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선진국에선 맞춤형 아기 어떻게 대응하나

대다수 국가들은 맞춤형 아기 탄생을 막기 위해 인간 배아 대상 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생명 윤리와 관련된 과학 연구에 엄격한 윤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등은 치료 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1990년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도 설치했다. 이 법에 따르면 불임 치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선천성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정된 지 2주 이내의 배아를 사용하는 연구는 가능하다. 유산에 관한 지식을 넓히고, 효과적인 피임법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러한 목적에 맞으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는 일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정부 기금을 지원받는 의학 연구는 국립보건원의 지침과 기준에 따라 규제를 받는다. 올해 4월 국립보건원은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 기술 적용을 금지하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어길 경우 연방 정부의 기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생식 계통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면 그 영향이 후대에까지 미쳐 안전 문제나 윤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인간 배아 연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는 않는다. 몇몇 주는 인간 배아 연구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어떤 주들은 이를 규제하는 법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캘리포니아주처럼 연구자들이 민간 기금을 지원받아 배아를 연구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유전병 고치기 위해 배아 연구 허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7월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팀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해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의 잘못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간 배아 연구는 유전적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에 한정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허용하고 있다.

인간 배아 연구는 인류의 질병 퇴치에 기여할 수 있다. 암과 에이즈 등 난치병은 유전자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적 진보를 이뤘다. 시력을 보완하는 안경은 콘택트렌즈를 거쳐 라식 수술로 이어졌다. 맞춤형 아기도 이러한 기술적 진보의 하나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기술적 진보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손실보다 큰지 여부이다. 일부 부주의한 운전자가 과속하다 사고를 낼 수 있다는 이유로 자동차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일부 남용 위험 때문에 맞춤형 아기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인간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배아도 인격체라고 본다. 인간의 생명은 처음엔 단순한 세포 덩어리에서 출발해 수정한 지 8주 이후가 되면 각종 장기가 생기며 인간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하지만 배아와 태아, 신생아에 이르는 발달의 연속성 때문에 배아와 아기를 윤리적으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배아는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배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배아가 인격체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맞춤형 아기 허용하면 유전자 차별 발생한다”

원자력이나 컴퓨터, 로봇 등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지만,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도 마찬가지다.

맞춤형 아기를 금지해야 하는 까닭은, 인간이 수단으로 다뤄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과학윤리학자는 “맞춤형 아기는 사람을 진열대 위의 상품처럼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존엄한 존재다. 따라서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인간이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배아 단계에서 시작된다. 발달 초기 단계의 생명이라도 어린이나 어른의 생명처럼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수정부터 출생까지의 과정에서 인격이 정확하게 언제 생기기 시작하는지 결정할 수 없다면, 배아를 발달한 인간과 같은 존재로 봐야 한다.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잘못 자를 경우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려면 성공률이 100%에 근접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잘라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비율이 높다.

맞춤형 아기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앞으로 신체와 지능, 건강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밝혀지면 이를 교정하는 기술도 개발될 것이다. 문제는 이 기술이 값비싼 상품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되면 비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만 유전자의 결함을 교정해 우월한 외모와 지능, 건강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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