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위한 역사이야기]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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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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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공부하다보면 같은 시대에 다양한 관점이 충돌한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말 개화기 때 충돌한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을 들 수 있겠지요. 우선 관련된 제시문을 확인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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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조선 정부는 1880년에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며 본격적으로 개화 정책을 추진했어요. 수신사와 조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개화에 적극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던 박정양, 김홍집, 김옥균, 홍영식 등의 개화파 인사들이 핵심 인물로 활동했지요.  
 
조사시찰단은 조선 정부가 1881년 일본에 파견한 시찰단으로, 공식적으로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와 달리 일종의 암행이었어요. 이들은 몰래 일본으로 들어가 일본에서 도입한 서양의 제도와 문물 등을 조사했지요.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의 개화파 인사들과 윤치호, 유길준 등의 수행원으로 구성된 조사 시찰단 일행은 4개월 동안 도쿄와 오사카 등을 누비며 메이지 유신 이후 달라진 일본을 시찰하고 귀국한 뒤,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해 개화 정책에 도움을 주었어요. 
 
(중략) 
 
1883년 5월, 미국은 공사인 푸트를 조선에 파견했어요. 이에 조선도 같은 해에 민영익을 대표로 한 보빙사라는 답례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했지요. 이때 보빙사로 파견되었던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변수 등은 개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어요.  
 
이렇듯 조선 정부는 수신사와 조사 시찰단, 영선사, 보빙사 등을 파견해 근대적인 제도와 문물을 배우기 위해 애썼어요. 
 
-<술술 한국사> 4권, 42~45p 
 
 
 
(나)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누구나 환영한 것은 아니었어요.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했거든요. 이들을 위정척사파, 그리고 이들이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며 벌였던 운동을 위정척사 운동이라고 해요. 위정(衛正)은 ‘바른 것을 지키다.’라는 뜻을, 척사(斥邪)는 ‘사악한 것을 배척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바른 것은 성리학과 조선의 전통 질서이고, 사악한 것은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와 그들의 문물 및 제도랍니다.  
 
(중략) 
 
1870년대에 접어들며 개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자, 위정척사파 역시 적극적으로 개항을 반대했어요. 이들은 서양의 물건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들로 그 양이 무한하지만 조선의 생산품은 주로 농산물이기 때문에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지요. 최익현은 이러한 상태에서 교역을 하면 서양에게만 이익을 줄 뿐, 우리나라의 경제는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러면서 서양 열강들의 끝없는 욕심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대책은 있는지 정부를 향해 따져 물었지요. 당시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거예요.  
 
-<술술 한국사> 4권, 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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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는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개화에 대한 찬반 입장을 내건 것이 아니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의 부국강병책을 주장한 것뿐이지요.  
 
한국사에 대한 다양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 두 제시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논술문제가 ‘당시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와 같다면, 제시문 외의 지식을 부가적으로 첨부할 수도 있겠지요. 개화를 핑계로 한 일본 및 서구열강의 이권침탈이나, 위정척사사상의 기득권 유지적인 성격을 제시하며 논리를 확장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본인이 오랫동안 체득한 기반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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